내 인생은 조립과 분해다.
메뉴얼을 따르는 조립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다. 주입식 교육, 프라모델 조립, 독서, 콘텐츠 소비, 비디오게임, 롤의 경쟁시스템. 만든 이의 계획이 존재하고 하나의 답이 존재하며 선형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조립이다. 몰입을 경험해 그 자체로 즐거웠고 주변의 인정으로 지속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이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직장생활에는 조립설명서가 없었다. 조립설명서가 있는 직업도 있었지만 스스로가 그걸 왜 해야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내가 아니여도 아무나 데려와서 교육만 시키면 할 수 있는 것을 왜 해야하지?
조립설명서를 만드는 사람이 되야겠다. 그러나 조립밖에 하지 않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조립을 하면서 유의미한 인사이트가 모여 조립설명서를 만드는 재능이 꽃피는 일은 없었다. 조립을 완성하기만 하는 정도, 주변의 인정을 받는 정도에서 적당히 멈췄기 때문이다. 학구자의 정신이 없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조립한 걸 부수고 분해하고 버린다. 조립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버리고 창조하는 사람의 정체성으로 채워넣으려고.
분해할수록 간결하고 변명은 적어졌지만, 창조하는 이의 정체성이 태어나는 일은 없었다. 분해는 창조하기 쉬운 환경을 마련하는 역할에 그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