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영향을 받아 형성된 신념은 50살이 넘어서도 불쑥 튀어나올 수 있다. 과거를 돌아본다면 이를 미리 알아채기 위함이다. 노욕으로 인생이 흔들리는 건 곤란하니까, 예방할 수 있는 건 예방하는게 바람직하다.

사르트르는 8살부터 11살 무렵을 다루었다. 따라하고 싶지만 11살 이전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짧은 장면들이 기억나고, 그 마저도 완성되지 않았으며 확실하지도 않다. 억지로 떠올려봐야 지금의 내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의미를 부여해버리고 말 것이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프레임대로 유년시절을 비추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면 사건들 속에서 얻은 인상을 토대로 의미를 부여해 나가야한다. 사르트르처럼 자신의 인생이 읽기, 쓰기를 위한 삶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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